역사의 흐름 속에서 군산
군산은 본디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 때에는 백제가 마한을 합병하여 백제국의 소속으로 마서량 또는 미사현, 부부리현이라 칭하였다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에는 옥구현으로 칭해졌다.
고려시대 현종 6년에 옥구현의 이웃에 있던 임피현에 예속되었다. (우왕 6년(1380년) 금강에서 왜구 5백척의 선박을 최무선 장군의 화포로 격멸)
조선시대에는 태조 9년에 해군 요새지로 병마사 관직을 두어 현의 행정을 겸하였다. 세종5년에 병마사를 첨절제사로 바꿔 그 후 다시 현감을 두었다.
일제시대인 1895년 옥구현이 옥구군으로 임피현이 임피군으로 개정되었고 1906년 10월 01일 칙령 제48호(1906년 9월 24일 공포)로 옥구군이 옥구부로 개칭되고 전라북도 경찰서 옥구분파소 설치 (1908년 군산경찰서로 개칭)되었다. 벚꽃축제로 유명한 전군가 도로는 1907년 전국에서 최초로 전주가도(지금의 번영로)포장공사 시행(폭 7m, 길이 46.5km)되었다. 1910년10월 01일 칙령 제7호(공포)로 군산부가 창설되고 옥구부는 옥구군으로 개칭되었다가 해방 후 1949년 08월 15일 법률 제32호로 군산부를 군산시로 개칭되어졌다.
성산면 변천사
옥구군 1읍, 9면의 하나. 본래 임피군의 지역으로서 임피 읍내 북쪽이 되므로 북일면이라 하여 16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상북면의 14개 동리와 남산면의 덕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성산의 이름을 따서 성산면이라 하여, 옥구군에 편입되어서, 내흥, 덕성, 둔덕, 고봉, 도암, 여방, 대명, 창오, 산곡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고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 6542호에 의하여 내흥리를 군산시에 넘겨 주어서 현재 8개 리가 되었다.
동쪽으로는 나포면과 임피면, 남쪽은 대야면과 개정면, 서쪽은 군산시, 북쪽은 나포면과 금상 건너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마서면과 마주하고 있다.
성산면에 진성창지
진성창은 창오리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창오초등학교 서쪽 논두렁에 우람한 버드나무가 가지를 넓게 받쳐들고 있다. 성산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다리실래’를 훌쩍 넘으면 곧 창오리다. 여기에 정자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은 1724년 (조선 영조 초) 이석장씨가 이룬 마을이고 버드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라 전한다. 이씨는 3천섬의 큰 거구였다. 조창의 망경산에서 이어 연봉을 이루고 있는 고봉산의 남쪽 기슭이다. 이씨는 토호였다. 가짐새나 그 위엄이 따른 장중한 토호였다고 전한다. 특히 전라감사 이서구씨와 각별한 교분이 있었다. 한다. 이씨 집터에서 북쪽 산기슭에 창안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진성창지다. 고려 12조창 중의 하나였다. ‘창안(倉雁)’은 원래 ‘창안’ 이를테면 ‘창(倉)의 안쪽’이라는 이름이었던 것이 한자로 정리하면서 엉뚱하게 창안(倉雁)이라 붙은 것이다.